일단 넣어둬 넣어둬/기억해두고 싶은 한마디

류시화-왜 시인을 만나야 하는가

85data 2016. 3. 5. 20:18
반응형

왜 ‘시인’을 만나야 하는가?

시인은 미친놈(년)이기 때문이다.

예전에야 동네마다 미친놈(년) 하나 정도는 있어서

미친놈하고 더불어 살았다.

미친놈이 각설이 타령이라도 부르면 

사람들은 하하, 호호 밥 한 숟갈 더 얹어줬다.

미친놈하고 함께 살았으니

사람들은 늘 세상의 저편,

관습의 저편, 제도의 저편,

상식의 저편, 생각의 저편,

윤리의 저편, 이해의 저편,

현실의 저편, 마음의 저편,

쉬바, 다 떠나서 정상의 저편을 볼 수밖에 없었다.

아니, 저편을 보고 있는 미친놈을,

그 미지를 볼 수밖에 없었다.

미친놈은 어떤 숨구멍이었다.

어떤 피난처였고,

어떤 창문이었고,

어떤 금기였고, 

어떤 두려움이었고,

어떤 부러움이었고,

알 수 없음의 지표였고,

무용함의 잣대였고,

이해할 수 없음의 명백한 증거였다.

우예대뜬동 미친놈은 일 안 하고도 

마을 속에서 묵고 살 수 있었다.

미친놈의 존재는 그 자체로 싫으나 좋으나

삶의 환기구였으니까.

그러나 작금, 

세상의 알려진 미친놈은 

다 격리 수용되었다.

상품이라는 균일한 질서를 흩으려놓기 때문에,

착취의 효율성을 떨어뜨려 놓기 때문에,

이윤이라는 절대를 상대화 시켜버리기 때문에,

노동의 일사분란함을 저해하기 때문에…..

뭐, 이따구 분석적, 역사적 이유도 다 필요 없이

미친놈은 무용하기 때문이다.

그 참을 수 없는 무용함의 무거움 때문이다.

유용함의 어미가 무용이기 때문이다.

그 무용은 지금과는 다른 유용을 꿈꾸기 때문이다.

그래서 우리는 가끔

시인(미친놈)을 만나도 되는 것이다. 

만나야 하는 것이다.

(다만, 살짝 미친 것들은 아이듯이 진짜 시인이 글타는 말이다.)

반응형

'일단 넣어둬 넣어둬 > 기억해두고 싶은 한마디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From 강상중  (0) 2016.03.05
신영복-여행이란  (0) 2016.03.05
From Eleanor Roosevelt  (0) 2016.03.05
구본형-공부에 대하여  (0) 2016.03.05
From 류시화, 삶  (0) 2016.03.05